Sunday, March 20, 2011

On the 2011 Japanese Earthquake



이번 일본의 대지진, 쓰나미, 그리고 원전사태로 이어진 “삼박자 재앙”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일본을 향한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일본에 “구제”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지금 엄청난 재앙으로 힘들어 하는 일본을 향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이자 행동이다. 이런 시점에서, 나는 지금이 바로 일본에 있는 기독교에 특별한 기회로 연결된다고 본다.

흔히 사람들은 일본을 두고 “왜 이웃 나라 일본은 한국과 달리 그렇게 기독교가 많이 안 퍼진 것일까?”라고 궁금해한다. 무슨 종교적인 탄압이 있는 것도 아닌 데 말이다. 주로 여기에 주어진 답변은 일본의 범신론적 민족성과 “천황”을 섬기고 있는 문화이다. 또 선교학계에서는 서양 선교사들이 일본의 상류층을 대상으로 선교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나는 위의 이유만으로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고 본다.

내 생각에 일본이 기독교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일본과 서양세계와의 그동안 가져온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일본은 일찍이 1868년에 메이지유신을 시점으로, 그때까지의 쇄국정책을 그만두고 적극적인 근대화 운동을 벌인다. 서양의 지식과 기술을 배운다는 목적으로 이때 일본 대표인사들이 미국과 유럽을 다녀온 것은 (Iwakura Mission) 물론, “고용된 외국인”(お雇い外国人)이라고 해서 나라의 돈을 들여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외국에서 초청해 그들의 기술과 지식을 이전하게 한 것이다. 여기서 이 “고용된 외국인”은 약 500명의 전문인을 3년 동안 일본에 초청해 기술이전을 한 제도인데, 당시 일본 나라 예산의 3분의 1을 초과하는 227만엔 (당시액수)을 들여 추진한 것이라고 한다. 물리학자와 농경학자부터 작가와 예술가까지, 각각 여러 가지 분야에서 전문가였던 이들 중에는 “Boys, be ambitious for Christ”로 유명한 William S. Clark같이 복음을 열심히 전한 선교사들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일본이 이들에게 돈을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당시 일본인들에게 “복음”이란 “서양에서 우리가 막대한 돈을 주고 고용한 외국인들이 전하는 메시지”이었던 것이다. 이건 마치 군인교회에 병사들이 초코파이를 하나씩 교회에 기증하면서 예배에 출석하는 거와 같은 꼴이다. 바울도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신이 교회에서 돈을 받으면 복음에 방해될까 봐 돈을 받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위와 같은 일본인의 정서하에 기독교가 널리 퍼지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백제 시대 이후 일본이 외국에서 자원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에도 외부 지원을 일절 거부했던 그 일본이, 드디어 감당할 수 없는 자연사태에 두 손을 든 것이다.

지금보다 일본의 기독교와 복음화에 더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존 파이퍼 목사님은 이런 재앙의 시기에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고통에 처한 이들에게 처음엔 동정, 그리고 물질적인 지원을 줘야 하지만, 그다음에는 반드시 “해답”을 줘야 한다고 했다. 이웃 나라의 재앙을 단순히 하나의 경고로 받기보다는,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물질적인 지원과 구제에 더 힘을 쓰고, 우리 백제 조상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고용된 외국인”이 아닌 다시 “도움을 주는 외국인”이 되어 일본을 향해 힘있게 복음을 전파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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