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03, 2011

On the name "Joseph"



오늘은 내 영어 이름 Joseph의 해석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알기로 성경에는 요셉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5명 등장한다. 야곱의 아들 요셉 (오리지널 요셉), 마리아와 요셉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아리마디아의 요셉 (예수님이 장사 될 무덤을 제공한 부자) ,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라고 하는 요셉 (사도행전 1장에 맛디아와 더불어 가롯유다 대신 열두번째 제자의 후보로 나왔던 요셉) , 그리고 사도행전 4장부터 계속 등장하는 ‘바나바’라고 불리는 요셉이다. 이 중 창세기에서 나오는 '오리지널' 요셉은 야곱이 일곱 번째로 갖은 아들이다. 야곱은 ‘레아’ 그리고 ‘라헬’이라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성경에는 야곱이 둘 중 라헬을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근데 아쉽게도 라헬은 수년간 잉태하지 못했고, 반면 레아는 아들, 또 아들 이렇게 4명이나 낳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라헬이 드디어 낳은 첫 번째 아들이 요셉이다. 그래서 그 이름도 라헬이 지은 것인데, 창세기 30:24에는 “그 이름을 요셉이라고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쓰여있다. 라헬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문맥에서, ‘요셉’이란 이름의 뜻은 ‘더함’, ‘하나 더’, 혹은 ‘Buy one get one free’인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위 라헬의 기도가, 수년 후에 라헬이 두 번째로 낳게 되는 베냐민을 통해 응답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요새 창세기를 더 자세히 본 결과, 여기에는 한층 더 깊은 내용인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라헬이 요셉을 낳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어쩌면, 매우 인간적이고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다. 자기가 그렇게도 원했던 아들을 하나님이 드디어 주셨는데, 주시자 마자 하는 말이 감사는커녕 “하나님, 하나 더요!”라고 외쳤으니 말이다. 레아가 4번째로 ‘유다’(=찬송)를 낳으면서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한 기도와 너무 대조된다. (아니면 이것도 가진 자의 여유이리라....)

이 배은망덕하게 들릴 수 있는 라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베냐민의 잉태를 통해 직접 응답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후 하나님의 크신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데 쓰신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창세기 48:5에는 요셉의 출생 이후 수십 년이 지나, 야곱이 자기가 죽기 전에 요셉과 그 두 아들(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한 말이 적혀 있다: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것이 될 것이요.
야곱의 이 말 대로 이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는 “요셉”이라는 지파는 없고 그 대신 “에브라임”과 “므낫세”라는 두 지파가 생긴다. 이제 보이는가. ‘더함’, ‘하나 더’의 뜻을 가진 요셉의 자리에 한 지파가 아닌 두 개의 지파,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생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1’을 ‘×2’로 재해석 해 주신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는 위를 또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로 해석하셨다. 즉, 예수님의 프로토타입인 요셉을 통해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상속자가 된 것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상속자,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린다는 것이다. 아주 의미 있는 해석이다. But I digress.)

하여튼 내게는 이 요셉의 이름에 대한 하나님의 새로운 해석이 남다르게 와 닿는다. 나로 하나님께 ‘아버지, 제게 아내만 빼고 모든것을 갑절로 주세요’라고 구하게 한다. 물질적인 갑절의 은사뿐만 아니라, 영적인 의미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의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기억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엘리사’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엘리사는 구약에 나오는 인물인데, 그 시대에 제일 유명한 엘리야라는 선지자의 제자였다. 하루는, 스승이 떠나기 전에 자기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구하라고 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열왕기하 2:9

이후 정말 엘리사는 그때까지 엘리야가 일으킨 모든 기적/역사의 정확히 두 배를 하게 된다. 이런 청출어람의 ‘엘리사’는 성경에서 ‘갑절의 은사’로 통한다. 그래서 난 이런 엘리사가 좋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은 내게 ‘노벨상 두 개’의 꿈을 주셨다. 왜 하나도 아니고 두개였을까. 그리고 흔히 사람들은 ‘한국어와 영어’, 두 개의 언어와 씨름하곤 하는데 왜 나는 한·영·중·일 4개를 도전한 것일까. 엘리야는 자기 제자의 대답을 듣고는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 도다’라고 하였다. 나도 하나님께서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 도다’라고 하실 정도로 입을 크게 열어 내 이름에 걸맞게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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