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03, 2013

On Lines



우리말에 비불외곡(臂不外曲) 이라는 말이 있다.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지 않는것 같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정이 더 쏠리거나 유리하게 일을 처리함은 인지상정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다.

작년말 미국과 한국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대선을 치루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두 나라를 비교분석하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의 보수/진보 분열과 한국의 세대간의 분열, 그리고 반식민주의/반공(종북/친미)의 분열을 떠나,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다음이었다: 아브라함 링컨이 스탠턴을 등용하고, 오바마가 힐러리를 등용한 것 처럼, 한국에는 박근혜가 안철수를 등용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언제 올까?

대통령이 한 번 바뀌면 위에서 부터 아래까지 거의 모든 자리가 대통령의 '내사람'들로 바뀌는게 한국정치사회의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의 연줄의 중요성은 더이상 강조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학계부터 대기업까지 라인을 잘 타고 윗사람들에게 '이사람은 내사람' 인(印)을 받지 않으면 "한자리"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현역 2년동안 내무반 바닥 정치를 통해 '라인 잘타기'의 중요성을 습득하게 된다. 이런 훈련은 제대후 사회생활 적응에 큰 도움이 되지만, 꺼꾸로 보면 사회의 '연줄 의존화 구조'를 영속시키는 하나의 메커니즘이 되버린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가 훌륭한 점은 바로 '자유경쟁'을 보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위에서 말한 '연줄'로 결정되기보다는, 적자생존의 메커니즘으로 인한 마켓에 제일 적합한 혁신을 이루는 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구조를 가춘 시스템은 그나마 (이상적인) 자본주의가 아닐까. 예전의 과거시험도 동일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현재 한국 사교육 치마바람 상태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연줄은 한국에만 있는게 아니다. 중국에도 走后门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식적으로 실력을 갖추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친한 사람을 통해 뒷문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미국, 영국도 '올드보이 네트워크'가 당연히 있고,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더 본질적으로 인간은 왜 서로 밀고 당겨주기를 하면서 출세/성공을 위해 연줄을 의존하는 것일까? 나는 이 현상이 다름이 아닌 인간의 죄성으로부터 온다고 본다. 본래 조물주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뻐하게 창조된 인간이, 그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게 되면서,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 내 연줄, 내 소속된 단체'에게 영광을 돌리게 된 것이다. 나 자신도 그리스도인으로써, 연줄을 하나의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것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만남의 축복을 무시하면 안되겠지만 (인간은 혼자 이룰 수 있는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내가 되야겠다고 다짐하는 2013년 새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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